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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사는 교회 2025 실천표어 :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교회소식

안식년에 부어 주신 생각지도 못한 은혜

LWCHP 2026. 7. 10. 10:34

7.3.2026 LWC 비전수련회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명기 32장 7절-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이사야 51장 1b,2절-

 

말씀으로 사는 교회는 권기창 담임목사 부부가 CRP(목회자 안식 프로그램)을 다녀와서 7월3일부터 5일까지 1박 3일간 비전 수련회를 개최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한 몸, 한 비전"을 주제로 진행된 수련회는 몸 된 공동체로서 주님의 비전을 더욱 확고히 하는 시간이었다. 첫날은 개회예배를 시작으로 오광복목사 이은경사모의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MBTI 시간을 가졌다. 각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성향과 특성이 있음을 배웠다. 먼저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 성도들은 웍샵을 통해 서로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는 은혜를 경험하였다. 저녁집회는 담임 목사의 안식 기간동안 받은 은혜와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특히 작년에 이어 올 해까지 두 번에 걸친 한국 방문을 통해 큰 은혜가 넘쳤다. 작년에 한국의 서쪽 지역의 순교지와 선교유적지를 방문한 것에 이어 올 해는 동쪽 지역의 순교유적지와 선교유적지를 방문하며 받은 은혜를 나눴다.

 

특히 한국 최남단 마라도교회 방문을 필두로 한강 이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초량교회 역사관, 창원에 소재한 주기철목사 순교 기념관 방문은 큰 도전을 주었다. 이어진 창원의 경남 선교120주년 기념관과 호주 선교자 순직 묘역에서는 큰 은혜와 더불어 깨달음을 주셨다. 호주선교사들은 일제의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배격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선교사들은 침묵했다. 그런 중에 일제는 호주 선교사 전원을 추방했고, 그 귀한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경남 노회가 해운대교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했다. 그러한 결연한 절개를 이어 받은 주의 종들이 항거하여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귀한 순교의 피를 흘린 것이다. 그 대표적인 목회자가 주기철목사다. 창원 웅천면 출신인 그는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고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드렸다. 참으로 큰 도전과 은혜 동시에 부끄러움이 함께한 순례였다. 

 

이번 안식 기간의 하이라이트는 뿌리 교회를 찾아가며 받은 은혜다. 안동 일직면 송리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한 종의 조부께서 설립한 교회다.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설립자의 손자 목사가 100여년 만에 설교를 한 것이다. 참으로 감격스런 시간이었다. 송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정례사관과 성도들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뿌리교회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했다. 예배 후 최사관께서는 1912년에서 1917년 사이에 말 탄 서양 선교사가 송리에 와서 밭을 매는 아낙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 아낙네가 그들을 영접하여 자기 집에서 쉬게 하면서 이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서울에 있는 가족에게 알리자 조부모께서 신혼집을 교회로 바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최사관께서는 이어서 서울 정동에 있는 구세군 역사 박물관 황선엽관장 사관을 소개해 주셨다. 서울에 올라가 약속을 하고 큰 매형이신 이억주목사, 권신덕사모와 동생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박물관을 찾았다. 황관장께서는 본인도 워싱톤에서 사역했었다고 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2시간동안 구세군 역사에 대해 자세히 브리핑을 해 주셨다. 그런데 그 전시된 사료 가운데 '말탄 선교사'가 있지 않은가? 이미 1908년에 허가두 선교사 부부가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와 선교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12년에서 1917년 사이에 안동 송리까지가서 전도를 한 것이다. 그들이 전도한 밭매는 여인이 바로 조모였던 것이다. 송리교회 주보에 '영문 개영일(교회 창립일)이 1917년 11월 14일'로 기재되어 있다. 황사관께서는 저의 조부이신 권영선사관과 송리교회 자료를 구세공보에서 찾는대로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감사하고 고마우신 분이다. 

 

1908년 말을 타고 선교하는 영국 구세군 본부 파송 최초의 선교사 허가두 사관 부부

비전 수련회 당일 아침에 마지막 수련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 구세군 역사박물관 관장이신 황선엽사관께서 보내신 메일이었다. 십여개의 파일과 그것을 현대어로 번역한 내용이었다. 우리에게 참 귀한 자료였다. 먼저 조부에 대한 사료이다. 조부 권영선께서는 1920년 '부위'로 임명됐다. '부위'는 구세군 사관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을 의미한다. 구세군은 '부위'가 된 후 5년이 지나야 '정위'가 된다. 따라서 5년의 기간이 지나 1925년 '정위'로 명을 받아 담임목사로 파송을 받은 것이다. 그 곳이 바로 함경남도 고산리였다. 고산교회를 핍박이 일어나 교회들이 강제 폐쇄될 때까지 섬긴 것이다. '부위'는 구세군 사관학교에서 2년간 훈련을 받은 후 임명이 되므로 1918년에 입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부께서는 1912년에서 1917년 사이에 자신의 아내가 밭을 매다 만난 '말 탄 서양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이 성장하며 소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구세군 역사 박물관에서 보내 준 사료 중에 매우 놀라운 기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동안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증조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1925년 5월 1일자 구세공보에 실린 "군우의 승텬"이란 기사다. 다음은 기사의 내용이다.   

 

군우의 승텬(천)

 

대구디방(지방) 소관 송리동영 담임사관 참위 리흥샹(이흥상)씨의 보고를 본즉 휘영병사 권태직씨는 륙십 륙세(육십 육세)의 로인(노인)으로 오래동안 신병으로 고통하다가 회춘치 못하고 임히(이미) 이 세상을 떠낫(났)는데 (권)씨는 자기 둘째 아들 [현(지)금 사관(목사)으로 있는 정위 권영선씨] 로 한가지 그 동리에서 오리(2km)나 되는데 있는 곳 장로교에 다녔었는데 밋음(믿음)이 돈독함으로 동리(동네) 사람에게 핍박을 당하나 조금도 흔들리지 안코(않고) 사오년 동안을 일심으로 나아가다가 본동에 구세군이 설립되며 (권)씨의 장자가 회개하고 전가족이 회개하매 자긔(자기)도 구세군으로 옮겨와서 자긔(자기)가 살든 집을 하나님의 성뎐(전)으로 밧(바)치고 그 차자는 하나님 사업에 밧(바)치어 사관(목사)이 되게 하였더라 권(씨)는 병석에 누어셔(서)도 성경 보기를 마지 아니하며 군가(찬송가) 부르기와 긔(기)도 하기를 쉬지 아니한 돈독한 신자라 하나님께로 간거슬(것을) 확실히 밋(믿)노라. 오일장으로 안장한 후 그 날밤에 휘영 담임사관의 인도로 츄(추)도회를 개?한바(개최한바) 일반 남녀 군우가 다수히 래참하야(참여하여) 성황으로 지내었는데 욕무경교졍원 목씨는 별세한 이의 력사(역사)를 들어 말한 후 일반 가족으로 위로뎍?으로(함으로) 말하기를 우리는 소망이 없는 사람과 갓치(같이) 슯허할거시(슬퍼할 것이) 아니라 일후 다시 만나볼거슬(볼것을) 성각(생각)하고 장래의 소망을 인하야(인하여) 도로히(오히려?) 깃버할거시라하야(기뻐할 것이라 하여) 한편으로는 위로하고 또 한편으로는 더해 밋(믿)음을 더 굿(굳)게 하엿(였)더라.

 

이 기사의 권태직씨가 바로 증조부이고, 사관 정위 권영선씨가 조부시다. 그 동안 조부로부터 신앙이 전수되었다고 들었는데 증조부께서 이미 1910년 전후에 오리를 걸어 장로교회를 다녔다.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당시 안동은 유교 사상이 깊어 동네 사람들의 핍박이 심했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하셨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 후 송리에 말 탄 선교사에 의해 밭 매던 아낙네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둘째 가정이 먼저 믿고, 장자가 회개하고 나머지 전 가족이 회개하여 믿음을 갖게 되면서 증조부께서도 구세군으로 옮기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살던 집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바치고, 둘째 아들 조부 권영선을 하나님 사업에 드려 1920년에 사관, 곧 목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안동 송리의 영문이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증조부께서는 병석에 오랫동안 누워 계셨는데 그 가운데서도 성경 보기를 마지 아니하시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한 돈독한 신자였다. 오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며 구세군 담임사관과 군우(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만날 것을 위로하고 믿음을 굳게 하였다는 기사가 너무 감동적이다.

 

조부 권영선 사관은 1925년 3월 1일자로 함경남도 고산리로 부임해 교회를 섬기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 1.4 후퇴때 가족을 데리고 남한으로 피난을 하여 철원을 거쳐 인천에 정착했다. 철원에서도 교회를 개척해 섬겼다고 선친 권오상장로께 들었다. 그리고 송림동 69번지에 제물포교회를 개척하여 섬겼다. 구세군은 일제가 강요한 전쟁을 지원하는 신사참배와 군자금 납부를 거부하고 저항하자 일제에 의해 1943년 완전히 강제 폐쇄를 당한다. 교단 조직이 공식해산되고, 목회자를 양성하던 구세군 사관학교도 폐쇄가 되었다. 기관지인 '구세공보'도 폐간되고 전국의 영문(교회)과 자산이 압수당하거나 활동이 전면 금지되었다. 구세군은 지하조직으로 유지되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발발한 6.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관의 순교와 납북, 시설 파괴등 다시 한번 막대한 수난을 당했다. 북한 공산군이 한반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기독교 교단이자 군대식 조직을 가진 구세군의 지도자들이 주 표적 대상이 되었다. 특히 북한 지역 황해도 함경도등 교세가 강했던 지역의 구세군 78개 교회 영문이 공식적으로 모두 폐쇄되거나 파괴되었다. 일제의 박해와 공산당의 핍박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부께서는 피난 후 1954년 5월 하나님의 은혜로 장로교 영수로서 몇몇 성도들과 함께 제물포교회를 설립하였다. 선친께서는 1933년 함경남도 고산리에서 출생하여 피난 후 제물포교회에서 30대 중반에 장로가 되셨다. 그 가운데 6남매를 두셨고 첫째 권신덕을 사모로 바치고, 다섯째 장남을 목사로 바쳤다. 맏사위가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한 한국교회 언론회 대표를 역임한 이억주목사다. 그 또한 둘째 아들 이우범을 목사로 바쳤다. 나머지 후손들도 미국과 한국에서 감사하며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고 있다.           

 

1925년 5월 1일에서 101년이 지난 2026년 7월 3일 미국에서 이 사료를 받아 보며 이제 9월 이면 6대째 신앙의 가문이 이어지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그리고 권태직, 권영선, 권오상, 권기창, 권세윤,권혜린(태중의 아기)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가문이 계속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천상에서의 기도와 이 땅에서의 기도가 함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려져서 후손 대대로 예수님 잘 믿고 땅 끝까지 선교하는 믿음과 은혜가 넘치는 가문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감동적인 뿌리 찾기의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놀라운 은혜를 비전 수련회에 참여한 성도들과 나누며 큰 은혜를 받았다. 왠 은혜요? 왠 사랑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 공동체의 하나님이심을 감사하며 찬양을 드린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한 몸 되게 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로 묶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우리 공동체와 후손을 통해 계속 전파되길 소원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수직 수평의 십자가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며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우리 모두 영광의 몸과 신의 성품으로 변화되어 먼저 간 믿음의 선조들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충만히 누리는 영광을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고 감사가 넘친다. 안식의 기간 동안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부어 주신 우리 하나님과 존귀하신 예수님 그리고 세밀히 인도하신 성령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아브라함을 통해 예수님 안에서 천하만민을 언약 백성이 되게 하시는 주님! 그 언약을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찬양드립니다! 땅 끝의 족속들이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하옵소서! 주의 공동체와 우리의 후손의 후손을 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송리교회와 사택 전경과 최영례 사관
송리교회 최영례 사관과 함께 동행한 이준호목사 부부

 

구세군 역사 박물관 관장 황선엽 사관께서 친절히 맞이해 주셨다. 이억주목사 권신덕 사모 큰 매형 부부와 함께